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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종철 빛과생명교회

에베소서 5:8-5:14 본문보기

내용

너희는 빛이라



우리 교회 이름은 빛과 생명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어려운가요? 어떤 분들은 빛과 소금 교회라 부르고, 또 빛과 사랑 교회라고 부르는 분도 있습니다. 빛도 힘든데 소금까지 붙인다면 정말 그 거룩함을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우리 교회와 같은 이름의 교회는 없습니다. 처음 이 교회 명칭을 정할 때 저는 요한복음 1장 말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생명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 빛과 생명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빛과 생명이라는 것은 실은 우주의 가장 중요한 두 키워드입니다. 물리학의 발전은 빛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립자의 세계나 천체 우주의 근원은 빛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를 푸는 것은 이 빛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생명체의 탄생은 자연세계에서 가장 획기적인 일입니다.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이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빛에 관해서입니다. 자연계의 사물 중 하나님을 가장 잘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바로 빛입니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 빛이 가지고 있는 투명성, 밝음, 순백, 뜨거움, 생명력은 하나님을 상징하기에 적합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째 날 가장 먼저 창조한 것은 빛이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빛의 탄생의 순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3대 오라토리오 중 하나인 《천지창조》는 매우 음울한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서곡 부분에서 태초의 혼돈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C단조의 Largo(느리게)로 그 암울함을 잘 묘사합니다. 이렇게 단조로 수분간 흐르던 분위기가 일시에 C장조로 바뀝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는 선언과 함께 “빛이 있었고”에서 “빛”이라는 단어가 울릴 때입니다. 이 부분에서 음은 갑자기 포리티시모(매우 세게)로 바뀌며 모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꽝” 하며 깜짝 놀랄 정도의 큰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마치 온 우주 공간에 일시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창조는 빛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태양은 넷째 날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빛의 근원은 태양이 아닙니다. 태양은 빛을 비추는 수단일 뿐입니다. 우주 곳곳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빛이 없는 곳이 바로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먼저 만드신 이유는 밝히 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빛은 그래서 진리를 상징합니다. 모든 것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빛은 또한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이번에 유럽우주기구에서 쏘아 올린 우주 착륙선 필레가 근 10년 동안 64억km를 달려 혜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하였습니다. 전세계가 흥분을 하였는데 이 흥분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 착륙선이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늘에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배터리가 방전된 것입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을 에너지의 근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빛은 곧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양을 통해서 빛을 비추도록 하셨다면 사람 사는 세상에도 빛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빛이고 교회가 빛입니다. 8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8)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빛의 자녀’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be 동사를 써서 우리가 빛입니다. 우리 빛. 참 놀랍기도 하면서도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다시 올라가시면서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하신 결정적인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등불을 하나 켜 놓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는 교회의 영광과 책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스스로를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이 말씀이 기록되었던 때는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 전세계에 흩어진 비참한 운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2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놀라운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흩어진 포로들이 아니라 이방 세계를 비추는 빛이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이 그렇게 전세계 곳곳에 심은 빛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전하고 주님의 율법을 좇아서 빛을 발휘합니다. 세상은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참 진리를 보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빛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소망이요, 생명이며, 진리입니다.



어둠의 일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세우셨는데 우리는 빛이 아니라 그만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소유했다고 의기양양하지만 세상은 코웃음을 칩니다. 세상을 비춘다고? 너희나 똑바로 살아!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9절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함은 선함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친절히 대하는 자세입니다. 의로움은 바름입니다. 정의로움이고 거룩함입니다. 진실함은 진리입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된 삶입니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가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친절하고 선한 사회입니까? 아닙니다. 약자에게 매우 불친절한 사회입니다.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살벌한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바른 사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정의보다는 불평등이, 합리성과 상식보다는 힘과 억지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백만 부가 넘게 팔릴 정도로 우리 사회는 정의에 대한 갈증이 팽배합니다. 우리 사회가 진실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부정부패와 관행과 편법이라는 거짓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위증이나 불법이나 거짓말에 대해서 별로 심각해 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에 《SBS 미래한국 리포트》가 생중계로 방영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공공성이 조사대상 33개국 중에 가장 낮다는 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공공성은 개인보다 사회를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의 원인은 공공성의 부족에서 찾고 있습니다. 개인의 탐욕이나 이기심이 팽배하며, 함께 사는 세상을 돌아보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그것이 여러 자료로 제시되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가치관 비교 분석을 하였는데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는 ‘경쟁’ ‘성공’이었습니다. ‘연대’와 ‘관용’이라는 가치는 뒤로 밀렸습니다. 이에 비해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국들은 이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 청소년의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은 36개국 중에 35등으로 조사되었고, 부모가 아이에게 남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겠다는 의지는 62개국 중에 꼴찌에 해당하였습니다.



지난 주간에 수능시험도 있었습니다. 매년 수능 시험은 마치 국가 중대사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출근 시간도 1시간 늦추어지고 영어 듣기 시간에는 모든 항공기들의 이착륙이 금지되었습니다. 해외토픽감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중요하고 부모들은 좋은 대학에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12년의 교육과정이 이 수능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이 과정에서 경쟁과 성공의 가치만 배우지 연대와 관용은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살기가 힘이 듭니다. 좋은 부모 만나고 뛰어나 자질을 가져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이야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행함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또 사회적 갈등과 국가의 발전을 막는 요소로 작용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본다면 경쟁과 성공은 어둠의 일입니다. 관용과 연대는 빛의 열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둠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은 빛 된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세상이 교회를 보면서 희망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삭막한데 교회는 따뜻합니다. 세상은 경쟁 물질 성공을 향하여 가는데 교회는 사랑, 나눔을 말하고 일시적인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의 가치를 말합니다. 물질적 탐욕보다는 가난과 청결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가 사회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내어놓을 때 그것이 빛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빛의 위력에 대해서 윤동주는 ‘초 한 대’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



어둠이 신속히 물러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래서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한 자루 촛불을 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의인 열 명만 있다면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는 어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열 명의 의인이라는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를 향해 잘못되었다고 외치며 스스로 옳은 길을 가는 선한 양심들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런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소한 교회가 이런 의인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보호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빛



세상에 빠져 있고 어둠에서 해매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추상같은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14절입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나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이는 세례식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세례는 침례입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들어 올리는 행위는 그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요, 어둠의 자식에서 빛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빛의 자녀이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체 발광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고 이 빛을 반사하는 그런 빛입니다. 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우리의 빛은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면서 빛을 발합니다. 보름달일 때가 가장 밝습니다. 태양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밝아집니다. 그래서 은혜와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고 진리의 빛을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빛을 발합니다.



우리는 이미 빛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빛의 자녀가 되는가? 아닙니다. 어둠의 일을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둠의 길을 가다가는 우리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는 말씀은 빛의 자녀로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율법도 길이나 걷는 것으로 표현을 합니다.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목적지는 길에서 쉬지 않고 성실하게 걸은 결과 얻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의 일들을 행하며 빛의 열매들을 먹으며 갈 때 우리는 진전한 빛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이르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밝혀진 것 연구중에 벌이 어떻게 일벌과 여왕벌로 나뉘는가에 대한 연구입니다. 꿀중에서 로열젤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벌이 애벌레를 기를 때 분비하는 물질입니다. 이 안에 로열랙틴이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연구결과 이 단백질이 여왕벌과 일벌을 구분한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로열젤리를 먹는 것은 여왕벌이 되고 이것을 먹지 못하면 일벌이 됩니다. 일벌도 이 물질을 먹으면 여왕벌로 바뀐다고 합니다. 여왕벌은 매일 알을 낳고 수명은 일벌레의 20배에 달합니다. 일벌은 죽도록 일만 하다가 죽습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신분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입니까? 그리스도 말씀을 따라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먹고 있습니까? 그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빛의 자녀들이지만 우리가 어떤 것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빛의 자녀들이 되기도 하고 다시 어두움 자식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빛의 자녀 된 여러분 빛의 자녀답게 밝고, 생명력 있고, 진리 안에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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