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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난 지혜

이수영 새문안교회

야고보서 3:13-3:18 본문보기

내용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사도 바울이 고전13:13에 쓴 것이 가장 좋은 답이 될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정말 이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 말고 또 그리스도인 또는 하나님의 백성의 덕목으로 꼽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다시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눈을 돌릴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갈5:22-23에서 그가 성령의 열매로 열거한 것들입니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할 수 있을 다른 이름의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지혜라고 부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는 바울이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는 삶의 원리들을 총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오늘 본문에서 지혜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우연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앞선 3:1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하며 이어서 성도들에게, 특히 선생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말의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선생이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선생에게 또 필수적인 것이 지혜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지혜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말조심하는 것이나 지혜 있는 것이나 선생들에게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지혜를 언급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와 아래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이 두 지혜를 대비시킴으로써 그는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더욱 확실하게 가르치려 한 것입니다. 먼저 13절을 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야고보는 이 말로 먼저 오늘 본문에서의 논의의 화두를 던지며 자신의 사고의 핵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상반절에서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하며 “지혜”와 “총명”을 짝지어 말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뿐 아니라 행함”, “진리와 그 실천”이라는 그의 특유의 사고구조를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반절은 달리 번역한다면 “그는 자기가 지혜와 총명이 있음을 선한 삶으로, 즉 지혜로부터 오는 겸손 가운데 행한 행위들로 보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 있는 사람이란 겸손한 사람이고 겸손한 가운데 실제로 선을 행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지혜의 온유함”이라 한 것을 “지혜로부터 오는 겸손”이라고 바꿔본 것은 온유와 겸손은 거의 동의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란히 쓰이는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겸손이 함께 가는 것은 어리석음이 거만과 함께 가는 것과 같습니다.

무릇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롭고 총명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즉 겸손 가운데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특히 선생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욱 분명히 그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야고보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야고보는 간과하지 않습니다. 즉 경쟁심과 이기적인 야망이 지혜와 총명을 보여주려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동기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하게 되어 있고 과장하며 더 나아가 거짓까지 동원하여 자기 자랑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며 공동체 안에서 혼란과 온갖 종류의 악한 일들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말을 들어봅니다. 본문 14-16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5절의 “땅 위의 것”이란 천상의 것,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욕의 것”이란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귀신의 것”이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진정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고 총명한 사람도 아니며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랑과 거짓말로 교인들을 현혹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탄의 졸개에 불과한 자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참으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이들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이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다시 한 번 확실히 밝힙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늘 가까이 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세상 학문이나 연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결하다”는 것은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하실 때의 그 청결함과 같은 뜻입니다. 지혜가 성결하다는 것은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순수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순수한 사람만이 참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뜻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혜는 화평케 한다고 합니다. 순수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싸우지 않습니다. 싸울 줄 모릅니다. 싸울 수가 없습니다. 불순한 뜻이나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갈등과 불화와 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혜는 경쟁의식과 파당을 만들지 않습니다. 지식만 가진 사람들은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싸우며 갈라질 수 있지만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일치를 이룹니다. 사실 야고보가 지혜 있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화평함일 것입니다.
지혜는 또 관용합니다. 관용은 사려 깊고 동정심 많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또 싸우지 않고 화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는 또 양순합니다. 관용이 있는 곳에 항상 같이 있는 것이 양순함입니다. 양순함은 그저 물러터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꺼이 양보할 줄 아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뜻을 수용하고 그에 잘 맞춰줄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싸울 일이 없고 화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에는 또 긍휼함이 있습니다. 긍휼은 남의 잘못을 사랑으로 교정해주며 용서할 줄 아는 것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 대해 너그러운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싸움이 날 수 없고 화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긍휼을 따로 언급하지 않고 선한 열매와 한 데 묶어 언급합니다.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한 것입니다. 그에게서 “긍휼”은 “선한 열매들”과 거의 같은 말이든가 두 말이 원인과 결과처럼 서로 아주 긴밀히 연결된 덕목들입니다. 긍휼하기 때문에 선한 열매들을 가득 맺는다는 것입니다. 긍휼은 남의 잘못을 사랑으로 교정해주며 용서할 줄 알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 대해 너그럽기 때문에 자연히 이런저런 선한 열매들을 많이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위로부터 온 지혜를 가진 이에게서 찾는 마지막 덕목은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순수한 사람에게는 자연히 편견과 거짓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편견과 거짓이 없는데 싸움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기 위해서도 편견과 거짓이 없음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혜에 속한 모든 성품은 공통적으로 화평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문 마지막 절에서 화평에 관한 말로 지혜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마무리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예수님께서 일찍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5:9) 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지혜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는 것임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지혜, 그것은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오늘날 온 세계는 끊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과 적대감과 테러로 인하여 너무나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연일 세계 도처에서 테러로 말미암아 수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며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국제기구도, 그 어떤 조약도 오늘의 테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위로부터 난 지혜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데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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