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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예수에 대한 신학자의 발견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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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20160807 “孝子 예수에 대한 神學者의 發見” (롬1:1-4) 88/87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개역개정)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2.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우리말성경)


‘發見(발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이제까지 찾지 못했던 것이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처음 찾아 낸 것’이라지만, 우리는 시시각각 발견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잊혀 질 즈음에 다시 상고하는 경우에도’ “발견했다”고 하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 에게는 발견이 또 다른 어떤 이 에게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요. 사실상 이미 있던 사실을 발견의 기쁨 운운한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엄밀히 따져본다면,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논리를 따라 ‘이미 있었던 창세 이후의 모든 物象들’에의 발견은, ‘발견 그리고 발견’ 등으로 ‘常時 再發見’ 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한다면, 이를 자기 유익 삼거나 대단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인간의 교만함은 반드시 시정 되어야 할 하나님 앞에서의 漫忽(만홀)함이 될 것입니다.

전도서 1:9에서,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모든 만물이 우리 주로 말미암고 다시 그 주님께로 돌아감’에의 진리를 역설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역대상 29:12에서 이르신대로, “富와 貴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로마서 11:36)” 하였던 바울 사도의 로마인들을 향한 외침은, 평범한 진리에의 再力說이며서도 당대 위대한 신학자의 ‘하나님이 잊혀진 시대 상황’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에의 재발견적 審美’라 하여 물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사도 바울이 신학자였다거나 현대 교육 시스템이 규정한 잣대로서의 학위자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변증과 설교와 사역의 가치를 존중하여 그를 위대한 신학자의 반열에서 通稱하는 인물이라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줄 압니다. 따라서 바울은 사도요 위대한 신학자라 함을 전제로, 오늘은 이 ‘신학자 바울이 발견한 예수의 효자 되심’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의 獻身”이라는 측면에서 예수의 예수 되심을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獻身’이라 함은 devotion 즉 ‘어떤 일에의 전념’, ‘뜨거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 ‘몸 바치기’라 하여 물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투신投身(throwing oneself)과도 매우 유사히 대조되어 ‘자기희생적 가치(value of self sacrifice)’를 구체화, 극대화 하는 행동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당수에 몸을 던져 그 아버지를 위해 공양의 투신을 몸소 보여준 효녀 심청의 예를 통해, 그 희생적 몸 바치기의 투신과 헌신의 경우를 교훈적 예화 삼고는 합니다만, 그녀의 투신과 헌신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것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투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은 지극히 공적이며 인류 전체, 인생 전체를 향하신 조물주의 자기 헌신에 다름 없음에 유념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점을 직시하였기에,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예수께서는 ‘효자’이셨음을 역설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표현에 ‘예수그리스도효자’라는 언급은 없으나 그의 갈라디아서 1:4-5을 보되 유심히 본다면, 예수그리스도야 말로 효자셨음이 자명해 집니다. 그것은,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건지시려고 자기 몸을 주셨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대속하려고 자기 몸을 주셨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뜻을 따라 자기 몸을 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께서는 모든 인생,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헌신하셨거니와, 이는 하나님 곧 그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찌 효자가 아니겠습니까? ‘孝子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듯 본 설교자와 여러 형제자매를 위해 ‘단순한 헌신’만이 아닌, ‘투신의 열정’으로써 우릴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분의 헌신은 침 뱉음 당하심과 채찍에 맞으심이며,
그 분의 투신은 십자가 위에서의 피흘리심이었고,
그 분의 이러한 자기 비우심은 곧 부활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始點’을 마련하신 ‘부활의 첫 열매’로,
‘승리의 개선가凱旋歌’를 높이 부를 근거가 되심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핍박하는데 앞장 선 사람이었음은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의 사도직에 대한 유대인들의 선입관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지요. 그렇기에 갈라디아서의 초입에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갈1:1)”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모습은 참으로 애잔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3절)” 라고 인사한 것은, 비록 그를 향한 비아냥거림과 신앙 노선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겪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확증을 통해 자신의 그리스도인 됨을 선명히 증거 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갈라디아서 1:4-5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예수의 소명, 예수의 사명(공적)이 분명히 나타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 주님의 소명은 아버지 하나님의 맡기신 희생역의 이행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명 완수(그 사명 완수로 남기신 공적)는 곧 우리 인생이 그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구속 곧 죄 사함의 은총을 덧입는 근거가 되셨다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남기신 공적 즉, 십자가에서의 희생과 부활, 다시 하늘로 오르심 등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위대한 업적의 주인공이 되셨기에 우리의 존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구원, 예수 능력이라는 위대함의 배경에는, 다시 한 번 돌아보거니와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신 ‘온전한 순종 즉 효성’에 다름없음을 부정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도 전한 것을 보게 되는데, 빌립보서 2:6-8을 보시면 하나님에 대한 아들 예수의 효성스러운 마음이 충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오늘! 2016년 8월의 첫 주일 이 뜨거운 계절에 주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 여러분에게 있어 예수는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의미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효자, 효녀로 현존 하십니까 그 하나님의 근심과 염려자로 현존하십니까?

위대한 신학자 바울이 발견한 효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순종의 도, 순종의 덕은 무엇인지를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오늘 현 시대를 순례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되돌아보며, 이 무더위를 지혜롭게 잘 지내고 가을의 넉넉함을 맞이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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