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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일어나 빛을 발하라

강원규

사 60:1~60:3 본문보기

내용

주전 323년은 유럽과 중동 지역에 큰 사건이 있었던 해입니다. 한 젊은이가 혜성처럼 나타나 그리스 일대를 통일하고 그 영토를 넓혀 중동 일대를 점령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그는 대제국을 이루고 나서도 정복전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쟁에 나섰다가 결국은 열병으로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불과 33살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제국은 부하 4명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프톨레미 왕조와 소아시아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셀레쿠스 왕조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중 셀리쿠스 왕가의 안티오쿠스 4세는 헬레니즘으로 통일하기 원했고 유대인의 신앙과 관습들을 철저히 파괴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만들고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하여 이 때의 사건을 몇 백년 전에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는 심각했습니다. 성경책을 불태우고 율법을 지키는 자는 최대 사형에 처했고 할례를 행하면 어머니와 아이 모두 죽였습니다. 물론 안식일을 지킬 수도 없었습니다.

이럴 때 모디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모디인에 찾아온 헬라의 사자가 헬라식 제의를 강요하자 유대인들이 그것을 따르려 했습니다. 이 때 제사장 가문 맛디디아는 유대인과 헬라사자를 죽이고 아들 5명과 함께 군대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마카비 항쟁입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열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또 그들은 지형적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의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제거하고 성전을 정화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성전을 새롭게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 성전에는 등불의 기름이 하루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등잔불을 계속해서 켜두라고 명령하셨는데(레24:2) 성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날이 소요되었습니다. 성전의 불을 밝힌 날부터 새 기름이 만들어지기까지 8일이 걸렸는데 하루치의 기름으로 8일 동안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기념하여 수전절(하누카)라고 하며 8개의 초에 매일 하나씩 불을 켜 마지막 날에는 8개의 초를 켭니다. 그래서 빛의 축제라고도 부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빛을 발해야 한다는데 ‘빛을 밝히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빛을 밝히는 것은 거대한 전쟁입니다. 때로는 육적으로 체감할만한 공격으로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 찾아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영적인 도전을 얻기도 합니다. 잘못된 세상 질서 하나를 바로잡으려고 해도 수많은 기득권과 싸워야하는데 하물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이라 하니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허상이 아니라 실재적 싸움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애초에 우리의 속한 곳이 거룩하고 밝은 곳이 아니라 악한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환경과 내적 갈등과 싸워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까? 또한 주님을 믿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싸웠고 확실한 믿음 가운데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야 했습니까?
본질상 우리가 빛에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우리를 덮고 있던 어둠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이려 달려갔던 바울을 친히 만나주셨던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만나주셨고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오늘은 <우리말성경>으로 제가 읽겠습니다.
1절.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네 빛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달은 자기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빛이 달에 반사되어 지구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도 우리도 여호와의 영광이 없다면 어두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광.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전에는 말씀을 읽어도 아무 감흥도, 이해도 되지 않았고, 도덕적이거나 지혜서로만 이해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니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요, 우리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길로 믿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그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이전엔 혼돈이요 어둠이었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 안에 빛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를 마음에 모신 이들에게 여호와께서 명령하십니다.
“일어나 빛을 비추어라”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빛 되신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 달이 자기 스스로 빛을 비추려 하지 않아도 태양 빛이 닿으면 이 땅에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당연히 그 빛이 세상에 비춰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왕으로 계셔서 온전히 보름달과 같은 빛을 반사하느냐,입니다.
내 안에 내가 주인 되었을 때는 예수님의 빛을 온전히 밝힐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거룩하지 않은 삶을 사는 자들,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수의 빛이 반사되어 나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비추시지만 그는 주님과 마주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참된 빛이신 예수를 모시자 지식과 부와 명예에 따라 붙어있던 자기의 욕심과 허세와 거짓들이 더럽게 붙어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를 온전히 주님께 맡겨 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십니다.
우리를 사용하사 세상의 빛으로 밝혀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 때에 일어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2절. “이제 보아라. 어둠이 땅을 덮고 먹구름이 뭇 백성 위에 있지만”
작년부터 올해, 대한민국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자연계의 변화로 채소값도 뛰고 AI로 달걀값은 상상할 수 없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란은 대한민국 뿐만은 아닙니다. 지구촌 상황도 혼란의 연속입니다. 사실 그 인류 역사상 단 한 순간도 평안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 속에 늘 어두움이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용’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옛 뱀, 곧 사단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습니다.(계12:17)
이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어둠에 머물러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빛을 싫어하며 거부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두려움으로 혼란에 빠지게 하고, 때로는 거짓된 종교와 사상으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세상은 불법이 성하여 사랑이 식어지며 사단은 온 세상을 어둠에 덮으려고 합니다.
생존을 위해, 자기 만족을 위해, 또는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참 진리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멀어져 갑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고 그 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
그 빛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어려움과 고난, 각종 인생의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헤쳐 나가려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24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유대인은 표적을 구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울 때 하나님의 이적을 바랍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에서 이끄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위기 때마다 기적으로 구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갑니다.

2)헬라인은 지혜를 찾습니다. 헬라인들은 인간의 지혜를 믿습니다. 그들은 토론을 통해 어려움을 헤쳐 나갑니다. 지혜야말로 어두움을 이길 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3)예수께 속한 자는 십자가로 나아갑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형벌 중에도 가장 지독한 형벌로 치욕스럽고 저주스러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유대인들이 바랐던 <하나님의 능력>이며 헬라인들이 바랐던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실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성령을 통해서만이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수 있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고 있다”
이 장면이 분명하게 나타난 사건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이었습니다.
사도들이 함께 모여 성령강림을 기다렸을 때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집 안에 가득했으며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 위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사도들은 더 이상 나약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확실한 믿음 가운데 거하게 되었고, 담대히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주님의 성품대로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께서 주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의 영광이 임한 자를 알 수 있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 있는 삶으로 주님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3절. “나라들이 네 빛을 보고 나오고 왕들이 네 떠오르는 광채를 보고 나오고 있다.”
성령은 우리를 주님 닮도록 이끄십니다. 거룩한 열매를 맺어가는 이들은 거룩한 빛을 세상에 비추게 됩니다.초대교회는 사랑이 넘쳤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되었으며,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까지도 복종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생명까지도 주님께 맡기며 순교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재물을 통용할 수 있었고 계급의 귀천도 초월할 수 있었습니다.
빛을 발하는 것은 이처럼 ‘자기 부인’, ‘자기 희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서는 주님과 함께 죽음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아서는 주님의 빛을 비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주님께 온전히 맡길 때에는 나라들이, 왕들이 우리 속에서 비춰지는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생명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망가진 세상을 향해 욕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을 바꿀 힘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는데 정작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복음 전하지 않고, 선한 삶을 살지 않고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마카비 항쟁과 같이 이 시대에 거짓에 대한 항거를 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이것들과 싸우겠습니까? 우리 안에 빛이 있다면 반드시 거짓은 사라질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면 세상이 바뀌어질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가 걸을 때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에 아주 작은 힘과 능력 밖에 없어요’ 라고요.
우리는 힘도 지혜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누카의 촛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의 등잔불이 새로운 기름이 준비되기 전까지 8일을 타올랐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면 또 다른 등잔 기름을 마련하기까지 우리의 불을 밝게 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불을 밝힌다면, 일터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등불을 밝힌다면 어느새 이 타오르는 촛불이 모여 이 망가진 사회를 비추는 빛이 되고, 춥고 힘들어하는 자들에게 온기를 전하는 불이 될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 명령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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