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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이냐 야망이냐

심양섭

막 10:35~10:45 본문보기

내용

비전이냐 야망이냐(막 10:35-45)

예화
올 4월 11일이 뭐 하는 날인지 아십니까?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요덕 정치범수용소 수용자였던 강철환 전 조선일보 기자도 어느 정당의 비례대표 전국구 의원 후보로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습니다. 국회의원 중에는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된 사람이 있고, 비례대표 전국구로 출마하여 당선되는 사람도 있는데, 비례대표 전국구에는 장애인, 여성, 군인, 약사 기타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후보로 선정됩니다. 국회의원 중에서 여성 비중이 너무 낮아서 여성 국회의원을 늘리기 위해 비례대표 전국구의 홀수 번호는 여성을 추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례대표 전국구 1번은 매우 큰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이 홀수번호를 점하기 전에는 대개 국무총리급의 명망가들이 1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4년 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습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비례대표 전국구 후보 1번에 그야말로 빛도, 이름도 없이 길거리 청소년들을 섬기던, 무명의 감리교 여성 목사님이 선정되었습니다. 강명순 부스러기사랑나눔회 대표였습니다. ‘가난한 어린이 1만 명의 대모’라고도 불리었지만 실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분입니다. 저는 그 분을 사랑의교회 세미나에서 한 번 뵈었습니다.
그 분은 국회의원이 되려고 야망을 불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갔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사명, 하나님의 부르심 곧 소명을 묵묵히 실천하던 사람입니다. 물론 그의 헌신과 봉사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표를 얻으려고 특정정당이 그를 공천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쾌락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저번에 제가 ‘사람의 계획, 하나님의 뜻’을 주제로 설교할 때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뜻은 공작이 그 아름다운 털을 다 뽑힐 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강명순 목사님이 집권여당 비례대표 전국구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된 것은 그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여 최선을 다하였을 때 덤으로, 보너스로 하나님이 허락한 것입니다.

청년들을 위한 네 가지 비전론
성인경 한국라브리 대표간사님이 쓴 ‘저지대 비전론’이라는 글을 보면 네 가지 비전론이 나옵니다. 첫째, 고지대론입니다. 돈을 벌든 권력을 잡든 지식인이 되든지 간에 가능하면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을 돕고 계도함으로써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비전론입니다. 김동호 높은뜻숭의교회 담임목사님이 역설하는 비전론이라고 합니다. 기업에 비유하면 대기업 임원이 되겠습니다.
둘째, 미답지론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 분야를 개척하여 사회와 하나님 나라에 공헌하라는 비전론입니다. 아무도 해 보지 않은 일, 남들이 관심 없어 하는 일을 해내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기업에 비유하자면 벤처기업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고지대론이나 미답지론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고도의 헌신이 필요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커다란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순수한 영성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셋째, 무비전론입니다. 고지대론이나 미답지론처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비전론에 반대하여 나온 이론입니다. 무비전론에 따르면 특별히 비전을 가질 필요 없이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면 그것으로도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전도서가 주는 교훈대로 사는 삶이라고나 할까요?
넷째, 저지대 비전론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낮은 곳으로 가서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는 것도 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절인 45절의 에수님 말씀과 일치하는 비전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인경 한국라브리 대표간사님은 자신이 예전에는 미답지론을 청년들에게 많이 고취하였으나 요즘은 저지대론을 역설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네 가지 중에서 어느 비전론을 택하고 싶습니까? 오늘 본문을 차근차근 짚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본문 강해
1. 10장의 개요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료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계속하여 가르칩니다. 한편으로는 바리새인과 논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오늘 본문과 직결되는 것이 있는데 세 가지입니다.
첫째, 누구든지 천국을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은 가르쳤습니다(vv. 13-16). 물론 어린이도 자동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세주로 영접해야만 합니다.
둘째,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 부가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vv. 17-27) 어린이 같은 믿음과, 소유에 의존하는 부자청년의 극명한 대조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가진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모두가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모아져야 하고, 재물에 대해서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므로 나는 청지기의 자세로 그것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데 재물을 가지게 되면 사람이 재물로써 자족하게 되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재물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재물은 우상 중에서도 가장 큰 우상입니다. 그래서 맘모니즘(물신주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대적은 바로 돈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왜 갑니까? 죽으시러 가는 것입니다. 그 죽으시는 목적은 오늘 본문의 요절인 45절에 나와 있습니다.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갚아주심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순종의 길을 걸었듯이, 우리 제자들도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세 번째로 예고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는 예수님이 장님 바디메오의 시력을 회복하여 주시는 기적이 나옵니다. 이 일화를 통하여 예수님의 진정한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영적으로 눈 먼 상태를 웅변적으로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쳐서 그들의 영적 맹안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진정한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적 의미의 성공과 출세, 권력과 부에 끌려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적 맹안을 오늘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가 시원하게 고쳐주실 것을 축원합니다. 주여, 우리들의 영의 눈을 열어 주소서. 영안을 열어주소서.

2. 오늘 본문 강해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을 거듭하여 알리고 있는데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뭘 하고 있습니까? vv.35-37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자리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수석제자인 베드로 다음 순위의 2, 3위 제자였습니다. 말하자면 ‘이너서클’(inner circle)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 앞에 권력욕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들도 예수님은 따르던 많은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권좌에 앉아 다스릴 것으로 본 것입니다. 한 때 로마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하였던 마카비 왕조를 떠올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내주하셔서 우리의 삶을 언제나 은혜와 평강 가운데 이끄십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영광을 받으셨으며, 받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길은 예수님에 대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38절의 예수님이 마실 잔은 무슨 잔입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잔입니다. 우리 죄 많은 인간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대신 마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도 같은 잔, 같은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큰 소리 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군대와 유대 기득권세력을 무찌를 때 자기들도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동문서답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이런 종류의 동문서답이 비일비재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먹고 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기는커녕 말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것이 제자도의 생생한 실제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고 하면서도 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 때가 너무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잔과 같은 잔, 같은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제자들 자신의 정화와,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잔이요, 세례일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자리 청원에 대해 다른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41절을 보면 화를 냈다고 합니다. 왜 화가 났을까요? 그들 자신의 야망과 질투심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도 야고보나 요한과 똑같은 권력 욕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안 그랬다면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요한과 야고보를 불쌍히 여기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은 내가 미워하는 바로 그 요소가 바로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음식을 탐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난다면 나에게도 그런 탐식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에는 길거리를 걸어가며 담배 피는 사람을 보면 화가 치미는데 바로 제가 과거에 그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vv.42-45)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은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말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들의 삶은 그 자체가 섬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자기 부하들 위에 군림하고 섬김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교회 안에서는 물론이요, 세상에 나가서도 지도자로 성장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리더십은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군림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서 우러나오는 야망입니다.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지만, 그 야망이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사명, 하나님의 소명이 아니라, 인간적 욕망이라면 과감히, 그리고 철저히 이 순간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3장을 보면 세상의 지도자들은 우리들의 선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말씀하시고,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그런 지도자들을 위해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권위는 좋은 것입니다. 합법적이며 정당한 권위는 세상의 모든 조직과 기관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확립되어야 합니다. 어느 집단이든 리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43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들 중에 크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6년 서른다섯 살 나이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예수님의 이러한 지도자관은 몰랐지만 그 지역주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물론 낙선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설교하고 있겠지요.
예수님은 이어서 44절에서 누구든지 너희들 중에서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모두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지도자관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지도자 상에 대해서는 이미 31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고 했습니다. 최후의 가장 큰 영예를 차지할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고, 의심 없이 순종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 45절, 오늘의 요절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섬김을 받으려고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대속물이 무엇입니까? 노예를 자유인으로 해방하기 위하여 노예를 대신하여 지불하여 주는 돈이 대속물입니다. 죄의 노예였던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고, 그 피값으로 제가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안에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나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나의 대속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마다 “주의 보혈”을 노래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지도자관을 말로만 설교하지 않고 몸소 실천하여 보이셨습니다. 자기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우리 인류 모두를 구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바로 그 지도자 상이요, 롤 모델이요, 우리가 품어야 할 거룩한 비전이요, 꿈입니다.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사회를 위해 썩을 때 이 사회가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느 위치에 가든, 국회의원이 되든, 사장이 되든, 교수가 되든, 사회복지사가 되든지 간에 그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이 사회가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대속물로서 하나님에게 지불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값으로 예수님의 목숨을 대속물로 받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모두는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나요?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지금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내 안에 성령으로 임재하여 나의 삶도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기 위하여 죽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그 숭고한 겸손,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자기백성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원천도 결국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항상 닿아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사랑의 힘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3. 적용과 기도
이제 적용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이 야망이 되지 않고 비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내가 음식점을 경영한다면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에 전념해야 합니다. 수익을 먼저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음식의 질과 서비스에 집중하여 나의 사명을 완수할 때 돈은 덤으로 하나님이 공급하실 겁니다. 내가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진정성과 열정으로 섬길 때 더 높은 지위는 하나님이 덤으로 주실 겁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행하면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성공하더라도 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나의 비전을 놓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고 교회 안팎의 훌륭한 멘토들에게서 멘토링을 받고 좋은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확신을 굳히고, 때로는 약간씩 수정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고지대로 갈지, 저지대로 갈지, 미답지로 갈지, 혹은 소시민적 일상의 삶에 충실할지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합시다. 그리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가장 선한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2012년 새해를 맞이한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흑룡의 해라고 해서 다분히 미신적이고 허황된 꿈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걸어가게 해 주십시오. 세상의 어떠한 유혹과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 그 뚜렷한 발자국을 따라 때로는 뚜벅뚜벅, 때로는 또박또박 걸어가게 해 주십시오. 저희들의 영의 눈을 열어주십시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것, 영원하지 않은 것들, 돈과 권력과 쾌락을 추구하게 하지 마시고,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 사랑과 섬김, 성숙과 성장, 하나님의 가치를 추구하게 해 주십시오. 인간적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품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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