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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변화산,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신앙인가?

류현수

마 17:1~17:8 본문보기

내용

<사순절에>변화산 사건은 십자가에 죽은 자의 모양이다.(마17:1-8)



서론

십자가의 죽음을 예언하고 제 6일에 높은 산에 올라간 예수가 있다.

예수는 거기에서 더 없이 흰옷입은 모습으로 홀연히 변화되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있었다.





죽음 예언은 신앙인의 삶의 목적과 생활을 설명한다.

창조사건에서의 여섯번째 창조사건은 짐승과 육축과 땅에 기는 것 등 땅에 사는 모든 만물을 만들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에게 땅에 사는 모든 것을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고 다스리라 명령을 하신 날이다.



더하여 씨 맺는 풀과 채소 열매맺는 나무를 식물로 받았다는 것은 그 희망의 소리인 풀과 새 목표를 위한 의지를 뜻하는 채소와 타인을 때리는 하나님의 몽둥이라는 나무까지 그 사람의 것이 된다.

이는 셋째 날에서 그 풀과 채소와 나무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여섯째 날이 타인을 위한 사명을 받는 날이라는 명확한 증거이다.



베드로는 반석에서 떨어진 반석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와 사람의 마음속 생각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야고보는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으로 그 생각에 있는 말씀을 붙잡고 라는 뜻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한서신에서 그 사랑은 가인과 같이 문제의 끝에서 타인을 창으로 찌르는 자란 뜻의 가인이 되지않는 사랑이다.

고로 제자의 이름 안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 예수화 함께 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있다.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이고 물에서 겨우 건짐을 받은자란 뜻이다.

엘리야는 미래를 위한 예언자이다.

신앙의 목적이 자기죽음에 있다면 아직도 예언자로서 아직 소망만 할 뿐이다.

예수가 그들을 품고 있다.귿그들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본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한 예수의 변화산 사건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밀을 풀어보자



본론



창조사건에서 6일은 하늘의 진리인 착한 행실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빛으로 시작되는 그 하루에서 시작하여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날을 거치며 인간 본연의 성품까지 변화 받는 과정을 거치고 이룬 신앙의 일이다.




한문의육(六)은, 數名(수명) 陸通(육통) 여섯, 여섯 번, 죽이다

육(陸)= 高平曰(고평왈) 路也(로야) 𧾹也(부야) 厚也(후야) 뭍, 언덕, 높은 산의 평평한 꼭대기

고(高)는 숭(崇)이라 하여 서로 존숭해주는 관계에서 가장 높이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육(陸)에 있는 로(路)= 길, 거쳐 가는 길, 겪는 일, 크다 부(𧾹)= 走(주) 달려 달아나다 후(厚)= 두텁다, 무겁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육(六)이란 <자기를 죽여 높은 평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위해,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자신을 무겁게 하면서도 빨리 가야 할 길이다>라는 말이 된다.

이는 모든 행동에서 타인들에게 우러러 볼만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이다.

성경의 여섯째 날 창조의 모습과 아주 똑같은 뜻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六에 있는 수가 高이다

지금 여섯째 날에 높은 山에 있다.

山은 한문에서 하늘의 진리를 기운으로 내려주어 땅에 있는 것을 낳아 살게해주는 기운이라 했다.

그 산에서 예수가 변화된고 그 보이는 환경이 변화 했다.




그들을 품고 있는 예수는 사람들 그 아무도 비난하거나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존경을 받으면서 그들을 존중해 주는 존숭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1-2절에 영을 위한 생명의 법인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되는 법에는 그아무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신앙이다.

예수가 입은 옷은 인간의 표현으로는 뭐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빛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만큼 희어졌다.



그 빛은 많은 사람이 하늘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할 만큼의 착한 행실이라 했다(마5:16).



하나님께서 변화산 사건으로 보여주시 비밀은 모든 사람을 마음에 품고 이해하며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자기 죽음이라는 것이다.



변화되다의 메타고는 옮기다 변형되다에 천국으로의 옮김이라는 승천의 뜻인 메타데시스를 만든다.


한문의 변할 變자는 전변(轉變) 전화(轉化) 화(化), 재리(災異) 천곤성형(天丨成形) 개(改)경(更) 사상(死喪)의 뜻이다.

또 변(變)을 파자로 풀면 가는 실 사(糸)자를 양쪽에 두고 사람으로 만드는 말이란 뜻의 말씀 언(言)자를 가운데 두고 그 아래에 때릴 복(攵)자로 구성됐다.

고로 ‘변한다’는 것은 만물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늘의 주인인 조물주와 같은 마음으과 하나되기 위하여 자신을 때리고 고쳐가고 또 구르면서 자신을 바궈간다는 뜻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기위해 죽어지기위한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결론


한문이나 성경이나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볼 때 예수의 변화산 사건은 신앙의 목적을 <사람들에게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십자가의 자기죽음>에 두라는 명령이다.

지금 교회의 모습은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나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인가?

지금 교회는 하나님의 명대로 사는가 아니면 마귀의 유혹을 따라 율법을 앞세우며 생각만 하나님의 사람이라 착각으로 사는가?


사순절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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