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신앙』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관계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인간과 동떨어져 있는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인격적으로 관계하시는 ‘코이노니아(교제·사귐)’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의 두 가지 DNA(유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이 두 관계가 왜곡되면 기독교는 타종교와 다를 바 없는 생명력 없는 공동체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로 그 생명력이 유지되며 더 풍성해집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작게는 ‘가정공동체’ ‘교회공동체’ 크게는 ‘지역공동체’ ‘국가공동체’안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고 그들을 애굽의 압제와 속박 속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열 두명의 공동체로 사역을 시작하셨고 부활승천하시면서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고 명령하신 대목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이 명령하신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부 기도에 힘쓴 결과 약속하신 대로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는 서로 통용해서 예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모여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예배를 드리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공동체였습니다. 오순절에 성령 받은 그들은 말씀을 듣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이 양육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입니다.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새 사람을 양육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이 모델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어찌 보면 먹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함께 먹다 보면 사랑이 생겨납니다. 날마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십년 사귄 것 보다 낫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고 떡을 떼고 기도를 했습니다. 가르침과 교제 그리고 기도! 이것이 공동체에 영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영적변화의 첫 번째는 나눔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체험을 하고 은혜를 나누고 성도의 교제를 하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나누다 보니, 사랑의 응집력과 폭발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한 몸을 이루는 유기체적인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도들 각자가 교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체의식’입니다. 우리가 지체의식으로 교회를 섬길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진정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뤄갈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잘 유지하는 것도 말 한마디로 시작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것도 말 한 마디로 시작됩니다. 흔히 예수 믿는 사람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만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갑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에게 말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사람에게도 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를 받고 믿음이 약해지고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말로 인한 상처가 많습니다. 말은 한마디일지라도 파급력이 엄청납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가려면 좋은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좋은 말보다는 바른 말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른 말은 사람을 세우지 못하고 공동체에 덕을 끼치기도 어렵습니다. 바른 말은 주로 정죄하는 말로 이어져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사로 대면하지 않고 피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기쁘게 하고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축복의 말, 격려의 말, 사랑의 말, 용서의 말, 긍정의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행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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