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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은혜

이요한 새문안교회

고린도후서 12:1-12:10 본문보기

내용

내게 주신 은혜(고린도후서 12:1~10)
(Ⅰ)
일본의 세계적인 부호이자 ‘마쓰시다 전기`의 창업주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아주 성공한 기업가입니다. 1965년 그가 그룹의 총수가 되었을 때 한 직원이 “회장님은 어떻게 하여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마쓰시다 회장은 자신이 세 가지 하늘의 은혜를 입고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 세 가지 큰 은혜란, 1. 가난하게 태어난 것, 2. 허약하게 태어난 것, 3. 배우지 못한 것.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직원이 “이 세상의 불행을 모두 갖고 태어나셨는데도 오히려 하늘의 은혜라고 하시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자, 마쓰시다 회장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나는 가난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가난이 첫 번째 은혜이고, 또 허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도 일찍이 깨달아 몸을 아끼고 건강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약한 몸으로 태어난 것이 두 번째 은혜이고,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기 때문에 항상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나의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는데 노력하여 많은 지식과 상식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환경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주기 위해 하늘이 준 시련이라 생각되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쓰시다 회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오히려 하늘이 준 은혜로 생각하고 열심히 자기를 훈련하고 노력하여 누구보다 값지고 훌륭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최고의 성공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감추고 싶고 때로는 외면하고 벗어나고 싶은 약점들이 있습니다.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이 가졌던 이 세 가지 문제 뿐 아니라 이 외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겪게 되고,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삶의 슬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배드리러 나오신 여러분 중에서도 떨쳐 버리고 싶은 인생의 굴레나 슬픔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려운 시련이나 삶의 환경을 만나게 될 때 이것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불행`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절망하게 됩니다. 내가 이 문제만 없으면 좀 더 훌륭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더 잘 되며, 형통하게 살아갈 텐데,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런, 저런 꿈을 이루었을 텐데, 내가 저 사람만 안 만났더라면, 내가 이 환경만 아니라면.....하며 아쉬워한다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밝게 살아가야 할 인생을 원망과 불평으로 낭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Ⅱ)
이 시간 함께 읽은 말씀에 나오는 바울 역시 훌륭한 사도요, 사역자이기는 했지만 그도 인간이기에 본문에 ‘육체에 가시`라고 기록되어 있는 자신의 결점 때문에 아주 낙심하며 힘들어했습니다. 오죽하면 갈라디아서 4장에서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다고 말했겠습니까! 바울은 육체에 가시만 없다면 훨씬 더 위대하고 완벽한 복음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육체에 가시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과연 바울이 떨쳐버리고자 했던 그 ‘육체에 가시`가 그의 인생에 큰 걸림돌이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혜의 통로였는지 함께 읽은 고린도후서 12장 1-10절의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은 1절부터 바울의 천국 체험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라고 굳이 밝히지 않고 3인칭을 써서 ‘그 사람`이라고 제3자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바울 자신이 신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사역자로서 바울은 정말 완벽한 조건을 갖춘 팔방미인입니다. 요즘 세상 말로 최고의 스펙을 가진 인물입니다. 빌립보서 3장 5절과 6절에 보면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바울은 당시 최고의 지성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엘리트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생가에 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잣집 자제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본문에 기록된 신비한 영적 체험까지! 사역자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훌륭한 주의 종입니다. 사실 이만한 스펙을 가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견주어보면 탁월합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바울은 조건만 잘 갖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역도 참 잘했습니다. 다 좋은데 딱 하나! ‘육체에 가시`가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육체에 가시`에 대한 견해는 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마다 다른데 어떤 학자는 안질, 어떤 학자는 간질병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학자는 바울이 선교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었던 우울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배고프고, 목마르며 얻어맞고 바다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운 때도 있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딱히 ‘육체에 가시`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간질병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교하는 지역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복음이 전파되고, 병마가 떠나가고, 그가 가는 곳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니 모두 바울을 얼마나 높이 우러러 보았겠습니까! 특히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주의 말씀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감격하며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바울이 내심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하며 복음 사역의 열매들로 황홀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모든 것이 감사한데 한 가지! 육체에 가시! 이것만 없으면 완벽한데 보통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Ⅲ)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은혜의 말씀을 전할 때 모두 회개하고 은혜 받는데 갑자기 눈이 뒤집어지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땅에 쓰러져 소리를 지르며 발작을 합니다. 한 동안 그러고 난 뒤에 일어나서 다시 복음을 전하는 바울,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어디라도 가서 숨고 싶지 않을까요? 자신의 가장 감추고 싶은, 약한 부분이 그대로 노출되었으니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설교를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발작을 한다면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겠습니까? 사역자로서 최대 약점입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바울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세 번 기도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세 번은 정말 마지막까지, 기도할 때까지 기도한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하여튼 끝까지 이것 좀 없애주세요. 하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답이 본문 9절 말씀입니다. 다함께 9절을 읽겠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9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육체에 가시에 대해서 바울이 생각하는 관점과 주님이 보시는 관점이 확연히 달랐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체에 가시에 대한 주님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네가 가시라고 하는 그것이 실상 ‘내가 너에게 베푼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전까지 이것을 제거해야 할 아픔, 과거, 상처, 사역에 가장 큰 걸림돌, 불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통 ‘은혜`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은혜라고 생각합니까? 시험에 합격하거나, 승진하거나, 사업이 잘 되거나, 결혼을 잘 한 것 등 대체로 잘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은혜의 관점을 조금 다르게 그 의미를 넓혀서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주어진 모든 것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후자의 관점에서 은혜를 해석한다면 때로 실패하고, 병들고, 가슴 아픈 일을 겪는 것, 세상에서 잘 안 되는 것도 오히려 그 일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차원이 상당히 넓혀지게 되는 것이죠. 설교를 준비하면서 9절 하반절을 읽고 묵상하면서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가시가 저주가 아니라 은혜임을 깨닫고 난 뒤에 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요, 내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게 하시는 과정이요, 주의 손길이라고, 은혜라고 생각하니 크게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프레임의 변화 아닙니까! 은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새롭게 해석하니 눈물이 아니라 기쁨이요, 감사라는 것입니다. 가시를 은혜로 깨닫고, 기뻐한 바울은 이후에 육체에 가시를 자랑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진 아픔, 슬픔, 말하기 힘든 고민들과 삶의 어두운 모든 것들이, 본문으로 말하면 육체에 가시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에는 바울과 같이 여러분의 자랑, 여러분의 간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Ⅳ)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는 무엇입니까?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주님께로 더욱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특히 목회자가 되도록 그동안 저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은혜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을 살펴보니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궁금하시죠? 안 궁금하시면 넘어갈까요? 때는 고3이었습니다. 수능 1세대로 본래 의대를 목표로 공부했던 저에게 고3은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그런대로 내신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수능시험만 보면 내신과 반비례하는 것입니다. 시험 볼 때 한 숨 푹~자고 일어난 친구들, 또 저보다 성적이 뒤쳐진 친구들이 어찌 이 시험만 보면 더 잘 하는지.......나중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고3병이 들었습니다. 중간고사를 치러야 하는데 잠시도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하고, 글자를 쓸 수도, 밑줄을 그을 수도 없습니다. 가슴이 턱 막히면서 답답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괴로웠습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여러 검사를 다 했지만 원인을 모르는 것입니다. 결과는 정상이었습니다. 참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입시 성적은 형편없게 나왔고 꿈꿨던 의대도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제 삶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은 힘든 한 해였습니다. 입시 실패로 괴로운 시간을 지났습니다. 처음 맛 본 인생의 쓴 맛이었기 때문에 마음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고 그 후로도 고통스러웠지만 25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 일을 겪으며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목회자로의 소명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아들을 서원하신 일을 듣게 되었으며, 주님 앞에서 여러 가지 목회자로서의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비로소 ‘주님, 제가 평생 주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라고 어머니의 서원이 아닌 저의 입술로 서원하였고, 육신의 의사가 아닌 영혼의 의사로 지금 여러분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안에 머물며 신앙의 길을 잘 걸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기 위해 때로 육체에 가시라는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받아들이며 인내하여 승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위대한 인물들도 하나같이 이러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브닌나 때문에 그렇게 울고 괴로워했는데 브닌나로 인해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이스라엘의 새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라는 용광로를 통하여 주님께 더욱 바짝 매달려 이스라엘의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어릴 적 겪은 그 아픔으로 인해 전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광야의 40년이 결코 잃어버린, 낭비된 세월, 어두운 과거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연단의 시간, 준비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을 정말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혹시 어둡고 힘든,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실패하셨습니까?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으십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괴로운 분이 있습니까? 힘들지만 오늘 말씀에 비추어 그 모든 것을 내가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 해석할 때, 우리 삶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Ⅴ)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자 칼뱅에 대한 일화를 말씀드리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어느 때보다 개혁자들에게 대해 관심이 높고 개혁자들의 주장을 되새기려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종교개혁은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츠빙글리, 칼뱅에 이르러 완성하게 됩니다. 칼뱅에 이르러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가 이태리에서 슈트라스부르로 가는 길에 그의 친구 기욤 파렐을 만나기 위해 제네바에서 잠깐 머물게 됩니다. 이 때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운동을 펼치고 있던 친구 파렐이 말하기를 제네바에서 함께 하자고 자꾸만 권합니다. 본래 칼뱅은 연구 생활을 해서 훌륭한 신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완강하게 거부하던 칼뱅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제네바에 머물면서 개혁운동에 가담합니다. 하지만 이 칼뱅은 너무나도 엄격하고 철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사게 되어 결국 3년 후에 제네바 시의 시의회의 결의에 따라 면직되고 급기야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목회하던 제네바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목회자로서 얼마나 억울하고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그럴 때, 그는 그 어떤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칼뱅은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목회를 합니다. 프랑스 피난민들이 모인 교회의 목회자로 일하면서, 스스로 말한 것처럼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결혼도 하고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3년 후, 제네바교회에서 아무래도 칼뱅이 있어야 종교개혁이 바로 되겠다고 생각하여 다시 청빙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칼뱅에게는 그 때 쫓겨났고 면직되었던 과거가 어찌 보면 목회 사역에 가장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논문을 보니까 칼뱅은 제네바로부터의 재청빙에 대해 “1천 번을 죽는다 하더라도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칼뱅은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다시 돌아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중에 그대로 돌아와 제네바에서 큰 역사를 이루며 종교개혁을 성공시켰고 나아가 오늘의 제네바를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육체에 가시가 있습니다. 시련, 상처, 현실의 굴레, 버거운 환경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영적으로 해석하면 걸림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신 은혜로 받아들이고, 기뻐하고, 나아가 자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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