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장 52절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율법사를 저주를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왜 누가복음 11장 52절 말씀에 율법사들을 저주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0장 1절 말씀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라며 누군가를 도둑이며 강도라고 단언합니다. 도둑이며 강도인 조건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가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요 10장 7절에서 8절로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라며 자신을 양을 지키는 문(門)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보다 먼저 온자들은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율법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항상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많은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구원하기보다 정죄하는 자들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을 정죄하려는 율법사들과 죄를 용서하려는 예수님과는 근본부터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지키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았던 율법사들은 결국 예수님까지도 율법을 통해 고소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거꾸로 말한다면 예수님이 오시기전까지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없었던 문, 이제는 구원의 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당연히 전에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무리들…율법사들은 당연히 거짓말이었으므로 도둑이며 강도라고 저주한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상징이었던 예수님…그 사랑과 용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구원이었습니다. 구원이야말로 예수님이 베푼 최고의 사랑과 용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구원을 막는 무리에게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무서운 저주를 했던 것입니다.
또 문(門)인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가며 나가며’ 꼴을 얻는 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사들은 예수님의 전하는 말씀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율법으로 얽어매어 없애려고 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교리적이고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정죄하는 율법사 바리세인들을 저주하셨던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도 무조건 예수님을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방법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 받을 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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