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0:25-29〕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 하시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
하늘을 가득 메운 황사(黃砂)가 시간을 덮고 있을 때, 예수님은 한 줌의 모래를 움켜쥐었다 그대로 날려 봅니다. 주먹 쥔 손바닥 안쪽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하늘로 오르는 새를 무심코 바라봅니다.
‘높이 나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버려야만 하겠지. 부드럽고 자유로운 영혼은 바로 세상의 것들을 버릴 때 얻을 수 있는 축복일 것이야.’
예수님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감돌 즈음,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느린 걸음으로 다가선 율법사 한 명이 다가옵니다. 번들거리는 수염을 좌우로 쓸더니 예수님에게 툭 질문을 던집니다.
“이봐요, 선생! 어떻게 해야 영생(永生)을 얻을 수 있소이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던가?”
“네 마음에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너의 이웃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고 기록되었소이다.”
“맞는 말이지요. 그리하면 반드시 영생을 얻을 것이요.”
“그래요? ‘내 몸처럼 사랑하라.’ 라고 한 나의 이웃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한차례 공중을 부유하던 먼지는 예수님의 옷깃을 겉돌다 자잘한 조각으로 부서져 내립니다. 바람이 숨죽일 때를 기다리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만가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계곡의 물소리는 청명하게 들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이야기는 어둠의 물결을 타고 향방없이 꿈결처럼 번져갑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길가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눅10:30-32)
인적이 끊긴 길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강도를 만나 것이었지요.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겨우 숨만 붙어 있었습니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 드러난 상처 위로 피와 흙이 함께 뭉개져 검붉은 빛을 띠었습니다.
그때 수풀을 헤치고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입으로 무언가를 흥얼거리던 그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부상당한 사람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길거리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보면 재빨리 달려들어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사장은 주변을 재빠르게 둘러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자 헛기침을 하더니 신음하는 부상자를 그대로 방치해 놓은 채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갑니다.
한참을 지나 또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레위지파 사람입니다. 레위지파 사람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가운데 가장 거룩한 지파이며, 성전 일을 받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레위지파 사람도 그 부상당한 사람을 발견했지만 혀만 차며 냉정하게 지나쳐 버렸습니다.
날이 서서히 저물어 가자, 들의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찬바람만 소슬하게 몰아칩니다. 부상당한 사람은 세찬 모래바람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자 더욱 심한 기침과 경련을 합니다. 경련이 겨우 잦아들 무렵, 누군가가 다가와 상처를 살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멀리 여행을 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눅10:33-35)
사마리아 사람은 묵묵히 낙타에서 기름과 포도주를 꺼내 상처에 붓고, 자신의 옷을 찢어 출혈이 있는 부위를 동여맸습니다. 그리고 그를 낙타에 싣고, 주막으로 데려와 밤새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사마리아 사람은 부상자가 걱정되었는지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돈은 이게 전부입니다. 부족하다면, 내가 오는 길에 다시 지불을 하리다. 그러니 이 부상자를 아무 이상 없이 돌보아 주십시오.”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과 예루살렘 사람은 오랜 원수지간으로 서로 상종조차 하지 않던 사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 만난 이방인을 위해 사마리아 사람은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이야기가 끝나자, 율법사는 한동안 말없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어봅니다.
“누가 진정한 이웃이겠소?”
사람을 구하고 치료할 때는 사회적 신분이나 전통과 이념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로운 마음과 그것을 실천한 사마리아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의 요점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참 이웃’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만나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한 것이 약품이 아니라 <기름>과 <포도주>란 사실입니다. <기름>과 <포도주>는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6:55-57)
요한복음 15장 1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라고 하였고, 위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신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름>은 무엇일까요?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2:20)
성경은 거룩하신 자 곧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으면 모든 것을 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은 성령의 깨우침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비유된 이야기입니다. 강도 만난 자를 통하여 세상에서 영적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비유한 말씀이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는 바로 <기름>과 <포도주>로 상징되어진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은 바로 말씀을 통해서 방황하는 이웃을 치유할 때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렇게 행(行)할 때 영생(永生)을 얻을 수 있음을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심령이 상한 내 이웃에게 말씀의 <기름>과 <포도주>로 치료하여 영생을 얻는 귀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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