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중략)…‘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눅19:1~7)
여리고 마을의 왕따, 그의 이름은 <삭개오>입니다. 마을사람들은 그 누구도 <삭개오>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금을 걷는 세리(稅吏)였는데 사람들에게 조금의 인정머리도 없이 악착같이 세금을 걷고 또 몰래 착복하여 부자가 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큰 부자가 되었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제 <삭개오>의 집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 갔습니다.
<삭개오>는 어느 날 우연히 세금을 걷던 중 사람들의 수근 거리는 소리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여리고 마을에 온다는 것이었지요.
“예수가 죽은 사람도 살려낸대!”
“세상에, 저번에는 중풍환자도 고쳤다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삭개오>의 가슴은 까닭 없이 쿵쿵 울려댔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나기 원하는 열망으로 가슴이 갑자기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거리로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아무리 예수를 보려고 까치발을 뛰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 사이를 헤집고 앞쪽으로 나아가려했지만, 번번이 밀려나왔습니다. 할 수 없이 포기하려고 돌아서는 그 때, <삭개오>의 눈앞에 커다랗고 멋진 뽕나무가 보였습니다.
‘그래…저거야. 저 뽕나무에만 오르면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거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삭개오>는 땀을 뻘뻘 흘리며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아래 있던 사람들은 뽕나무에 오르는 <삭개오>를 바라보며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뽕나무에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삭개오>는 꼭 예수를 직접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침 <삭개오> 아래를 지나던 예수께서 뽕나무에 우스꽝스럽게 매달려 있는 <삭개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눅19:5)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예수의 말을 들은 <삭개오>의 몸은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상대하지 않던 자신에게 귀한 예수께서 손수 말을 건네자, <삭개오>의 가슴은 희열로 가득 차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세상에…나 같이 미천한 놈의 이름을 알고 계시다니..’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눅19:7)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습니다.
“뭐야? 하필 왜 죄인 삭개오의 집에 머무시는 거야?”
“참, 예수님도 이상하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눅19:8)
“제가 갖고 있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겠습니다. 또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예수를 영접한 <삭개오>의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의 <삭개오>는 세상의 재물과 권력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고 난 후, 그의 세상은 평안과 사랑이 넘치는 그 곳… 참 하나님의 세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날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의 온갖 조롱이 담긴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삭개오는 뒤돌아보지 않고 예수님만을 보기위해 뽕나무로 올라갔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멸시와 조롱을 이겨내고 마침내 뽕나무에 올라선 <삭개오>를 예수님은 선택하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도 세상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뽕나무로 올랐던 <삭개오>처럼 세상에 머물지 말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말씀을 통해 변화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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