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5:22-23)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물은 같은 곳을 두 번 흐르지 않는다.’
물은 한번 흘러간 길을 다시 거슬러 오르지 않습니다. 아래로만 흐르는 물의 속성 때문에 물은 땅에서 가장 낮은 곳인 최종 목적지 바다 향해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어느 때 물이 웅덩이를 만나 고여 있으면 마치 흐름을 멈춘 것 같지만 웅덩이가 물로 다 채워지면 망설임 없이 다시 흘러 바다로 갑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도 흘러가는 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계획과 뜻을 정하셨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반드시 도달하는 물의 속성처럼 반드시 이루고 마는 것입니다. 얼핏 우리들의 생각으로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신 것 아닐까?’하고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때가 되면 물이 바다로 흐르듯 계획한 바를 반드시 실행해 옮기고 마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은 에서이고, 동생은 야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쌍둥이 형제 중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우 야곱을 이삭의 후계자로 선택하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예언을 하시면서 이미 뜻을 세우신 것입니다. 당장에는 장자의 명분을 갖고 있는 에서가 유약해 보이는 야곱에 비해 사내답고 용맹하니 사람들은 이삭의 유업을 에서가 물려받을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이미 ‘야곱’을 이삭의 후계자로 정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하라’한지라 …<중략> …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창25:25,창25:29-33)
에서는 사내답게 사냥하기를 좋아했으며 성격 또한 시원시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면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들에서 돌아오자마자 배가 몹시 고팠던 에서는 어슬렁거리다 야곱이 만들어 놓은 맛있는 죽을 발견합니다. 에서는 아우 야곱에게 죽을 달라고 청합니다.
“야곱아, 배고파 죽겠다. 그 죽을 내게 다오.”
“형님, 그럼 이 죽을 줄 터이니 장자의 명분은 내게 넘겨요.”
에서는 동생 야곱의 말에 속으로 ‘자식, 그런다고 장자의 명분이 넘어가나…더군다나 네 놈 같은 약골에게 장자는 어림없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까짓 장자 명분이야 뭐…너 가져라.”
농담처럼 가볍게 약속했던 그 말이 그대로 될 줄은 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자신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치밀하게 짜놓았던 각본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서가 비록 호탕한 성격을 소유했지만 반면 신중하지 못한 그의 성격을 십분 이용해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옮기기 위한 작은 명분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장자의 권리를 에서에서 야곱으로 옮기려는 하나님의 막후 공작은 다음 사건에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이삭은 자신이 죽기 전에 모든 장자의 권리를 에서에게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취하고자 이삭의 아내 <리브가>까지 끌어들입니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창27:27)
에서가 사냥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리브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야곱은 결국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 사건의 배후에 치밀하게 에서의 어머니이자,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의 마음을 움직여 사건을 주도면밀하게 이끌어 왔던 것입니다. 관례대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포만감에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 이삭은 야곱을 에서로 착각하여 모든 장자의 축복을 야곱의 머리에 내립니다. 이미 기력이 쇠하여 눈이 흐린 아버지 이삭이었지만 혹여나 알아볼까 두려워 털이 많은 에서처럼 보이려 야곱은 팔에 염소 새끼의 가죽을 둘둘 말아 이삭을 감쪽같이 속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아비 이삭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 사물을 구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 평생을 함께 살아온 두 자식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사람의 털과 짐승의 털을 구별 못했겠습니까?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 두 아들 중 굳이 이미 장자인 에서를 끌어 내리고, 유약해 보이기가지 한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고자 그토록 노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야곱의 향취는 바로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미 야곱을 세우기로 애초부터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사람의 생각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야곱을 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먼 길을 돌아 온 것입니다. 이삭 역시 겉모습을 보고 축복한 것이 아니라 야곱의 몸에서 나는‘여호와의 복 주신 향기’를 맡고 이미 하나님의 의도를 깨우쳤기에 마음껏 축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세우시고 선택을 하셨다면 언젠가는 기필코 바다로 흘러가는 물의 속성처럼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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