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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현 칼럼] 가난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

관리자 ㅣ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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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현 칼럼] 가난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

강도현 (<골목사장 분투기> 저자) l 등록일:2012-12-31 12:58:51 l 수정일:2012-12-31 13:02:25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설교는 아마도 성육신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창조주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신의 권리를 벗어버리고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놀랍습니다. 게다가 권력자의 모습도 아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약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쇼킹하기까지 합니다. 누군가를 구원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함이 인간 세상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셨고 그 가난이 결국 인간과 세상을 구원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들에게도 같은 비상식을 요구하신다는 것이죠. 빌립보서의 말씀이 항상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가끔 책 덕분에 라디오 인터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어김없이 들어오는 질문은 ‘왜 억대 연봉 금융인이라는 직업을 갑자기 그만 두었느냐’는 질문입니다. 솔직히 그리 반가운 질문은 아닌데 책을 내면서 저자소개를 그렇게 쓴 것이 문제였습니다. 뭔가 쇼킹한 프로필을 원했던 출판사의 요구였지요. 어쨌거나 한 때 돈을 잘 벌었다는 게 제 프로필이 돼버렸습니다

얼마 전에 가장 친한 친구 부부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 하도 궁하게 사니까 친구가 비싼 밥을 사준 것이죠. 정말로 오랜만에 곱창을 씹었습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잘 알던 친구의 아내가 묻더군요. “오빠, 지금 행복해요? 돈 걱정 안하던 시절이 그립지 않아?” 라고요. “뭐.. 행복하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행복하잖아”라고 답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처럼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딱히 가난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하려다 보니 어쩔 수없이 가난해졌습니다.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많이 부유했다가 갑자기 돈에 쪼들리는 삶을 살게 되니 불편함도 물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가난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배우게 됩니다.

가난을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의 자녀로 자랐기 때문에 가난이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전도사 시절 더 이상 우리 형제를 키울 경제적 힘이 없어서 2년 가까이 시골 외가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비록 초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그것이 가난 때문이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두 아들을 시골로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생인 저는 시골에서의 삶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줄곧 도시에서 자란 제 마음 속에 하늘의 별을 그릴 줄 아는 시골의 정서가 남아있는 것은 바로 그 2년 덕분입니다.

시골에서 다시 도심으로 와서도 우리는 계속 가난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맞았던 생일에 처음으로 어머니가 생일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어머니도 일을 하셨기 때문에 친구들 초대하라고 잔칫상만 차려놓고 일을 나가신 거죠. 제 기억에 처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던 것 같습니다. 한 친구가 그렇더라고요. “와~ 이렇게 좁은데서 어떻게 살아?”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그 때 저희 집은 10평정도 되는 주공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고 그 친구는 그 세 배 정도 되는 대우 아파트에 살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디테일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그 사건이 제게 적잖은 충격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나쁜 의미에서의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가난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교육의 결과였겠죠?^^

사람들은 제가 많은 돈을 벌다가 갑자기 가난해진 것을 보고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저 사람은 행복할까? 제 솔직한 답을 드리자면 ‘네 저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이 행복의 가장 근원은 아마도 이 모든 과정을 함께 겪는 제 아내의 인내심일겁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인터뷰 질문 다음에 꼭 들어오는 질문이 또 이거거든요. “아내 되시는 분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아내의 이해가 없었으면 절대로 이렇게 살지 못하겠죠. 아내 또한 가난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아는 사람인데 제 결정을 존중해주고 인정해 주니 제가 생각해도 참 좋은 아내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내에게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간도 크죠. 이런 아내에게 화를 내다니... 조카가 초등학생이 되어 선물을 하려는데 초등학교 1학년생이 들고 다니는 가방 가격이 보통 25만원 한다는 겁니다. 저는 세상이 미쳤다고, 정신없는 짓이라고 했더니 아내 왈 어른들은 명품 가방이라고 몇 백 만원 씩 쓰면서 처음 학교 들어가는 애들에게 그 정도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습니다. 저는 ‘애들 망치는 지름길’이라며 애꿎은 아내에게 화를 버럭 내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내의 말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심하게 카톡으로 사과를 했지만 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네 딸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놀림당할 걸’이라고 세상이 협박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가난해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테죠. 25만원짜리 가방을 해줄 수 없는 아빠는 어떤 기분일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겸손은 무엇일까? 빌립보서에서 말씀하신 ‘이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우리 삶 속에서 아주 작은 부분까지 이 말씀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25만원짜리 가방을 사지만 그리스도인은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한다면 평균적인 가방 가격도 내려가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그런 가방 없어도 위축될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가난해진다면 그런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을 텐데...

가난은 불편합니다. 그런데 가난하지 않으면 절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도가 그러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누구에게 희망을 거실까요? 교육 잘 받은 사람? 돈 많은 사람? 판단력 좋은 사람? 열정이 많은 사람? 저는 하나님의 기대가 스스로 가난해지는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셨으니까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수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정의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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